2014. 12. 25. 16:53ㆍ등산/한라산
▲ 한라산 백록담 서벽.
지난 주 우연히 인터넷 검색중 최근의 한라산 산행기를 보다가
최근에 내린 많은 눈으로 멋진 설경이 보고싶어졌습니다.
갈 수 있는 일정을 챙겨 봤더니 12월 24일이 가능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우선 비행기표를 알아 보았습니다.
성탄절을 끼고 샌드위치 휴일이라 쉽지 않을 거라는 염려를 하면서요.
그런데 원하는 시간대에 적당한 가격의 항공권이 남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지요.
혼자라도 무조건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백수로 계시는 LBG 큰형님이 생각났지요.
당장 문자를 드렸더니, 그거 참 좋은 소식이라고 함께 가시겠다고 하시네요.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했습니다.
그리고는 설레이는 맘으로 오늘을 기다렸지요.
지난 주 그렇게 춥던 날씨가 이번 주 들어 많이 풀린다는 예보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실 날씨가 포근하면 한라산의 멋진 설경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겨울엔 기온이 낮고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야
진정한 겨울산다움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날씨까지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암튼... 이런 과정을 거쳐 12월 24일 새벽, 택시를 타고 김포로 갑니다.
LBG 큰형님의 부지런함으로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했네요.
06:35발 이스타항공으로 제주로 날라갑니다.
아직 창밖은 깜깜하네요.
제주 날씨가 오늘 흐린다고 되어 있는데
07:50쯤 도착한 제주는 맑은 날씨를 보여주고 있네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합니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09:00 출발하는 740번 버스를 타고 영실로 이동합니다.
요즘은 제주도 버스도 환승이 적용됩니다.
09:50 영실매표소에 도착해서 산행준비를 하고
10:00 본격적인 한라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의 한라산 산행계획은 이렇습니다.
영실에서 올라가 윗세오름까지 갔다가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까지 진행하다가 되돌아나와서 어리목으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한라산은 최근에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려서 정상은 등반이 불가능합니다.
성판악에서 오를 경우, 진달래대피소까지.
관음사에서 오를 경우, 삼각봉대피소까지.
그리고 돈내코 방향은 아예 출입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영실과 어리목에서 윗새오름까지만 산행이 가능하고
윗새오름에서 남벽분기점까지도 러셀이 되어있지 않아 부분 통제중입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보다는
영실의 오백나한과 백록담 서벽과 남벽의 멋진 설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이번 한라산 등반계획을 잡았었습니다.
기왕에 가는 한라산, 정상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지만
겨울 한라산의 진가는 영실이 더욱 멋지게 생각될 수도 있으니까요.
버스가 들어오는 영실매표소에서 영실입구까지는 2.5킬로미터의 거리입니다.
이 구간만을 전문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택시가 만원을 받고 손님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큰형님과 저는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올라갑니다.
포근한 날씨덕분에 등에서 땀이 나네요.
원래 아스팔트 도로인데 눈이 가득합니다.
우측으로 보행자를 위해 나무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눈에 파묻혀 전혀 보이지 않네요.
전문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택시도 영실입구까지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도 요금은 만원을 그대로 받고 있습니다.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ㅎㅎ
날씨가 완전 봄날이라 셔츠만 입고 올라갑니다.
큰형님은 20년 만에 제주도를 방문하셨고
역시 20년 만에 한라산을 올라가신다고 하시네요.
너무 오랜만에 오셔서 20년 전은 기억도 나지 않으신다구요.
멀리 병풍바위가 보이네요.
계속해서 날씨가 이처럼 좋았으면... 하는 바램을 합니다.
산방식구인 석고상님이 카톡으로 큰형님한테
영실의 오백나한을 다 세어보고 오시라는 미션을 내렸거든요.
과연, 오백나한을 다 셀 수 있을까요?
셀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제 영실입구입니다.
매점에서 간단한 먹거리 등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인증샷을 찍고 산행을 시작합니다(10:40).
해발 1280m입니다.
원래 표석에 씌어 있는데 눈으로 보이지 않네요.
그동안 내린 눈의 양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올 겨울 한라산의 누적 적설량이 거의 2m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올라가면 어떤 그림을 볼 수 있을까... 잔뜩 기대를 하면서 올라갑니다.
하얀 눈이 덮혀있는 병풍바위가 가까이 보입니다.
병풍바위 우측으로 오백나한의 모습이 나무사이로 보이네요.
부지런한 산님들이 저기 앞에 올라가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윗새오름으로 가고 있을 것 같네요.
병풍바위 오름길 전망대에 올라서 조망을 하려는데
언제 어디서 몰려왔는지 안개가 영실의 오백나한을 뒤덮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 댑니다.
염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거지요.
현재 해발 높이가 1500m 정도 되니까 기상이 순간적으로 변합니다.
특히, 겨울산은 예측이 불가능한데다가
이처럼 눈이 가득 쌓여있고 날씨가 포근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서쪽에서부터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네요.
순간순간 보여지는 영실 기암을 그 때 마다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는 병풍바위를 향해 올라갑니다.
영실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병풍바위 구간입니다.
병풍바위도 거의 안개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네요.
이제 오백나한도 안개속으로 사라지려 합니다.
빨간 깃발을 따라 올라갑니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날씨 좋은 날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창고사진 2013. 1. 19)
'순백'이라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 거지요.
이제 한라산은 거의 안개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안개가 걷히면서 예쁜 설경이 조금씩 보여지곤 하네요.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거지요.
사실, 오늘 산행의 주된 목적은 한라산에 내린 눈을 보러 온 것이니까요.
서울 경기 등 도심권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런 눈을 보기 위함입니다.
눈이라고 다 같은 눈이 아니니까요.
전망대입니다.
원래 안내판에 나와있는 그림을 보는 곳이지요.
하지만 오늘은...ㅎㅎ
이제 멋진 풍경은 보기 어려울 것 같고 직접 설국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큰형님은 동화속 나라에 오신 것 같다고 하시네요.
큰형님께서 20년 만에 한라산 산행을 하시는거라
기왕이면 더욱 멋진 설경을 기대했었는데... 많이 아쉽네요.
그래도 지금 현재를 즐기시는 큰형님.
스마트폰을 꺼내서 멋진 모습을 담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형수님께 날려 주시네요~~~^0^
고도가 높아질수록 쌓인 눈의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이처럼 멋진 설경은 난생처음이라고 하시네요.
겨울 한라산에 오면 거의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겨울왕국 말씀을 하시면서 큰형님이 앞 서 가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화이트아웃과 같은 현상이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일말의 기대를 해 봅니다.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듯이
지금 이런 상황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으니까요.
윗새오름 대피소 가는 중에 계속해서 이런 그림이 펼쳐집니다.
이제 대피소에 거의 다 왔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이런 그림입니다.
(창고사진 2013. 1. 19)
하늘에선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해가 구름을 이기지 못하네요.
윗새오름 대피소도 눈에 파묻혀 있네요.
먼저 인증샷(12:01).
영실매표소에서부터 2시간 만에 올라왔네요.
여기도 높이가 1700 고지입니다.
설악산 대청봉(1708m) 정도 되는거지요.
일단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합니다.
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잠깐만이라도 안개를 걷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식사중에 한쪽에 앉아있던 축구선수 '구자철' 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5년 1월 9일부터 개최되는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화이팅을 했지요.
식사를 마치고(12:27).
식사전 보다는 조금 환해졌습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틈을 타 인증샹을 얼른 한 컷 더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남벽분기점을 향해 가기로 합니다.
안내소에서 직원이 창문을 열더니 남벽으로 가실거냐고 묻네요.
갈 수 있는데 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와 어리목으로 내려갈거라고 했더니
깃발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나오라고 합니다.
윗새오름 대피소에서부터 남벽분기점 방향으로는 러셀이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저 앞 서 간 몇몇 산우들의 발자국을 따라 갑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것은 기본이고 체력적으로도 무척 힘이 듭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백록담 서벽이나 남벽을 볼 수 있는 확률이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작은 기대를 가지고 가 봅니다.
영실에서 윗새오름 대피소까지 오면서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설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눈꽃이 아니라 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런 모습으로 그 혹독한 겨울을 나는 겁니다.
힘이 드실텐데도 큰형님의 표정이 밝아 보이네요.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역시 설경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봐야 더욱 아름답지요.
멋진 풍경을 핸폰에 담으시려고 큰형님이 얼른 핸폰을 꺼내셨네요.
와~~~아~~~~!!!!
"큰형님 빨리 와 보세요~~" 소리를 지르고 저는 그만 넋이 빠져 버립니다.
황홀감이죠!!!
아쉽게도 큰형님이 오시기 전에 다시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등로를 빨리 오실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더 가까이 가봅니다.
다시 또 햇살이 나오고 있네요.
하늘이 열릴듯 열릴듯 하다 맙니다.
등 뒤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댑니다.
열심히 햇살을 응원합니다.
바람이 좀 더 세차게 불어대야 안개가 걷히는데
바람도, 햇살도 구름과 안개를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남벽분기점 방향으로 진행이 어려워 기다리기로 합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는 거지요.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니까요.
그러던중 하늘이 열리면서 백록담 서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다가 다시 안개속으로...
오늘 백록담 서벽을 볼 수 있을까요???
다시 또 하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크게 소리지르며 바람과 햇살을 응원합니다.
와우!!!!
숨이 멈출듯한 환상적인 광경이 연출됩니다.
다시 또 사라지기 전에 얼른 인증샷을 찍습니다.
이 사진 한 장에 오늘 한라산 산행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용암의 분출로 만들어진 백록담 서벽에
환상적인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준 백록담이 다시 또 그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2분 정도 자신의 멋진 모습을 맘껏 뽐내고는 다시 안개속으로...
하지만 이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는 없을테니까요.
윗새오름 대피소로 돌아 나옵니다.
다시 또 화이트아웃 현상이 나타났네요.
윗새오름 대피소 지붕에 들러붙어 있는 눈입니다.
이제 어리목 방향으로 내려갑니다(13:22).
그야말로 설국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가끔씩 안개가 걷히고는 하지만
아까처럼 파란 하늘은 더이상 나타나질 않습니다.
여기도 날씨가 좋으면 이런 풍경이 보여지는 곳입니다.
(창고사진 2013. 1. 19).
하지만 오늘은 안개 뿐입니다.
만세동산 전망대도 들러봅니다.
원래는 이런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죠.
(창고사진 2013. 1. 19).
여기도 적설량이 엄청납니다.
희미하게나마 어리목 하산 풍경을 담아 봅니다.
한라산 맑은 물로 목도 축이구요.
물이 아주 달고 따뜻합니다.
사제비동산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옵니다.
눈썰매 타기 좋은 코스지요.
한라산은 이제 완전히 안개속으로 묻혀 버렸네요.
어리목... 산행을 마칩니다.
산행종료(14:26).
아이젠과 스패치를 정리하는 동안 조금 더 맑아졌네요.
어리목 광장에서 맞은편에 있는 어승생악은 오늘도 오르지 못했네요.
조망이 좋으면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접었습니다.
언젠가는 오를 날이 있겠지요.
◆ 산행코스 : 영실매표소 - 영실입구 - 병풍바위 - 윗새오름 - 남벽분기점(일부)
- 윗새오름 - 만세동산 - 사제비동산 - 어리목.
◆ 산행시간 : 4시간 30분(산행인원 2명).
어리목에서 버스를 타고 제주로 돌아오던중 한라병원 앞에서 내려
제주에서 유명한 고기국수집을 찾아 갑니다.
고기국수(창고사진 2013. 1. 19)
맛있는 고기국수로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와서
18:35발 이스타항공을 타고 저녁 20:00쯤 김포 도착.
56번 버스로 귀가(20:45).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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