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5. 17:53ㆍ등산/한라산
▲ 영실 병풍바위 주변 풍경.
서귀포 금호리조트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돈내코로 이동한다.
서귀포 서귀동 비석거리 정류장에서 돈내코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시간에 한대 간격으로 버스가 있는 모양이다.
일단 5.16 버스를 타고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돈내코까지 3킬로미터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걸어가다가 들어오는 차를 잡아 타기로 하고 걸어가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 차량이 보이길래 손을 들었더니 태워준다.
직원들 얘기를 들으면서 돈내코지구 안내소까지 올라갔는데
오면서 보니까 버스가 뜸하게 다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굉장히 외진 곳이다.
관광버스로 들어와도 주차장에서 산행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와야 하는 그런 곳이다.
우린 아주 운이 좋아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차량을 타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횡재한 기분이다^0^
어제는 관음사지구에서 성판악으로
그러니까 북쪽에서 올라와 동쪽으로 내려갔었는데
오늘은 남쪽에서 올라가 서쪽으로 하산 할 예정이다.
오늘 들머리는 돈내코지구.
돈은 돼지를 뜻하고, 내는 하천을, 구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방언이란다.
따라서 돈내코는 멧돼지들이 물을 먹었던 입구라는 뜻이란다.
재밌는 이름이다.ㅎㅎ
돈내코 탐방로 앞에서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돈내코지구는 1994.7.1~2009.1.4까지 자연휴식년제로 탐방이 제한되었던 곳이라고
안내판에 설명되어져 있다.
그러니까 15년 동안 사람의 발길을 끊었다가 2년전에 개방된 곳이다.
오후부터 눈소식이 있는데 현재 날씨는 정말 좋다.
이곳은 아직 억새가 한창이다.
억새밭 너머 멀리 서귀포 앞 바다가 보인다.
금빛 억새를 배경으로.
어제 관음사지구와 비슷한 분위기다.
초입은 가을분위기가 난다.
남벽분기점까지 7킬로미터.
남벽분기점이라고 표시해 놓은 이유는 백록담까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표에 밀림입구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정말 숲이 밀림을 연상케 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해발 200미터 간격으로 높이를 알리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편안한 등로다.
간간이 보이는 빨간 리본이 등로 표시.
눈이 많이 쌓일 경우를 대비해서 매달아 놓은 것이다.
아직까진 포근한 날씨.
해발이 높아지면서 눈이 쌓인 모습이 보인다.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점점 더 많은 눈이 보인다.
제주 특유의 단어들이 보인다.
살채기도... 무슨 뜻인지...^0^
소나무들이 힘차게 쭉쭉 뻗어 있고.
기온도 떨어지고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불기 시작하고... 벗었던 쟈켓을 덧입는다.
평궤대피소 내부 천정에 맺힌 물방울.
평궤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는 남벽을 향해 간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마 돈내코로 다시 내려갔을 것이다^0^
눈보라가 몰아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에다가 허벅지까지 푹푹 빠진다.
바람을 피해 스패치를 차고 눈보라와 싸우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서귀포 앞바다의 멋진 풍경을 조망하는 곳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드르... 들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찬 눈보라를 온몸으로 견디며 서 있는 겨울나무들.
생명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다리는 푹푹 빠지고 얼굴은 얼고... 하지만 경치는 끝내준다.
느껴지는가... 세찬 눈보라가.
소리까지 담았다면 현장감을 제대로 전해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그럴 겨를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해서든 이 순간을 지나고 싶었으니까^0^
그래도 이런 멋진 풍경에 위안을 삼으며 아내와 함께 서로 격려하며 앞으로 나간다.
평궤대피소에서 몇 명의 등반객들을 만났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이 넓은 한라산에 아내와 나 단 둘 뿐이다.
가능한 피부노출을 삼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온이 많이 낮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기도 계곡인데... 눈만 가득하다.
돈내코 안내자료에 보면 여름에는 계곡이 아주 좋은 곳이다.
남벽분기점까지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남편과 함께 제주여행한다고 와서는 이게 뭔 고생이람.ㅋㅋ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논어의 글이 생각난다.
정말 누가 시켜서 하는 거라면 이런 생고생을 하겠는가?^^*
나무 하나 하나가 성탄 트리다.
좀처럼 줄지 않는 거리.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는 등로표시 빨간색 동앗줄만 따라 걷는다.
그것도 가끔은 눈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남벽 통제소.
역시 아무도 없다.
산행중 대피소를 만나면 반가운건데 오히려 음산하다.
이곳에서 백록담 남벽을 조망해야 하는데
눈보라만 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인증샷만 찍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윗세오름으로 향한다.
방향을 틀어 바람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더 세찬 바람이 몰아친다.
정말 이러다가 조난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는다.
한시간만 바람이 좀 잦아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잠깐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 바람을 피한다.
숲으로 들어오니 얼마나 따뜻하던지.ㅎㅎ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는 풍경이 다가선다.
그래도 등로가 확실히 보이는 것만도 다행이다.
와우!!!!
아무리 갈길이 바쁘더라도
손이 시리고 안경엔 김이 서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그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안경에 서린 김이 얼어 앞을 볼 수가 없어 안경을 벗었다.
시야가 뿌옇지만 그래도 그게 더 낫다.
드디어 윗세오름.
여기도 해발 1,700미터.
설악산 대청봉이 1,708미터니까... 엄청 높은 곳이다.
윗세오름 표석 왼쪽에 나 있는 발자국이
아내와 함께 남벽분기점에서 걸어온 자국이다.
한라산 윗세오름 휴게소.
역시 썰렁하다.
그래도 이곳에 오니까 등반객들이 간간이 보인다.
무척 반갑다^0^
이제 영실 방향으로 서둘러 하산을 한다.
역시 바람이 엄청나다.
영실방향에서 올라오는 등반객들이 윗세오름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언제나 하산하면서 올라오는 친구들을 보면 왠지 뿌듯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별 거 아닌거 가지고 폼 잡는 그런 우쭐함.ㅎㅎ
저러고도 나무들이 겨울을 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
얼어죽기전에 먼저 부러져서 죽을 것 같다.
남벽분기점에서 윗세오름 올 때까지의 험난했던 등로를 생각하면
영실 하산길은 편안하다.
아직까지 바람은 세차게 불어대고 있지만.
영실기암으로 유명한 병풍바위가 있는 곳인데
눈보라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와 안개를 한번 걷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또 오라는 뜻으로 알고 그냥 내려간다.
이제 남은 거리는 2.1킬로미터.
그냥 굴러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0^
아쉬운 마음에 잘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지만 셔터를 자꾸 누른다.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먹이기 위해 죽을 끓이다가
잘못해서 솥에 빠져 죽은 줄도 모르고 그것을 먹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자식들이
울다가 하나 하나 기암으로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영실 오백나한.
그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영실로 하산코스를 잡았었는데... 다음에 봐야겠다.
해발 1,500고지.
영실이 1,280고지니까 얼마 안 남았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간다.
영실에서 올라오려면 만만치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추위에도 아직 계곡은 얼지 않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 간다.
눈보라는 아직도 몰아친다.
드디어 영실.
반갑다...ㅎㅎ
누군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하산완료 인증 샷을 찍는다^^*
영실지구로 내려오니까 제설차로 제설작업이 한창이다.
대기하고 있는 택시들은 모두 체인들을 감고 있고.
이런 정도인데도 입산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
제주도, 특히 한라산에서는 이 정도는 별거 아닌 모양이다.
암튼, 무사히 하산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산에서는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었었는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하산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한라산을 여러 차례 올랐었지만
돈내코와 영실 코스는 처음이었다. 아내는 두 번째이고.
어떤 산이든 한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연 앞에 우린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산행이었다.
오늘 산행 역시 기억의 한켠에 오래도록 아름답게 자리하리라 믿는다.
◆ 산행코스 : 돈내코지구 - 평궤대피소 - 남벽분기점 - 윗세오름 - 영실(12.8㎞).
◆ 산행시간 : 5시간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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