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2007. 10. 19. 11:17자유게시판/일상에서...

 

노산(鷺山)도 어는 신문에선가 말했지만, 왜 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이곳이 불안 지대다,

둘째는, 자녀가 이미 외국에 가 있고 그곳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어 있어 늘그막에 외톨이가 돼, 그래 간다.

세째는, 이 기회에 가서 돈을 번다 하는 건데, 이건 아직 젊은 나이에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첫째 이유는, 6·25를 회상할 수 있고 또 새로운 국제 정세의 변화를 미미 염려하고 마치 이 땅이 어떤 전장(戰場)이 되듯이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불안감을 느낀다면 자기만 불안한가요? 지식이나 돈 있는 사람, 국회의원, 시장, 학장을 지낸 사람들까지도 여기 휩쓸린다면 이건 배은망덕의 소행이죠.

조국의 은혜를 못 받은 자도 하구많은데 남이 못 가지는 돈, 지식, 벼슬도 차지했던 이가, 어떤 뜻에선 지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못난 조국'이라고 떠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둘째로, 자녀를 미리 보낸 사람들이 외롭다면 그들을 불러오면 될 것 아녜요?

 

세째 이유로는, 한마디로 인생철학의 문제요. 한 1천 년 산다면 까짓것 한 1,2백 년씩 돌아다니며 살 수도 있지만

기껏해야 칠팔십 년 사는 건데 누른밥 조가리 같은 나머지 늘그막을 못 참고 외롭고 귀찮은, 뜻대로 안 돼 버리고 간다는 건.
그 짧은 세월 그곳에 가서 편안하게 살려고 한다지만그게 눈이 어두운 탓이 아니겠어요?

그곳서 돈을 벌겠다지만 거기 가서 일할 만큼 여기서 보람있는 일에 노력하면 이곳서도 됩니다.

아, 그곳 가서 아무 일이나 하고 여기서는 모셔주는 일만 하겠다는 거예요?

 

모두가 주인의식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인은 불행을 도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주인답게 살면 이런 현실이 될 수 없어요.

아무리 초가삼간이라 해도 자기 집에 불이 나면 헛수고인 줄 안다 해도 물 한 바가지라도 더 끼얹으려고 하는 것이 주인의식이죠.

내 집에 불이 났는데 효과만을 따져서 도망가는 주인이 있습니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것이 창조가 아닙니까?

 

조국을 버린 후예들이 진정 조국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영어로 발전한 사람이지만, 마지막 병상에선 독일어만 해서 간호원이 독일어밖에 모르는 줄 알았다고 증언한 것이 그 전기에 나와 있어요.

이게 조국입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에서는 주인 의식은 어디로 가고 온통 구경꾼만 있는 것 같아요.

또 저, <북간도>를 쓴 안 수길 씨의 말대로 나라 사랑이란 것, 갚는다는 것은 별것 아니예요. 국토, 동포를 같이 염려하고 아끼는 것이 그것이죠.

동포가 없으면 들판에 나가 혼자 사는 것과 같은데 가족만 그립고 먼 가족인 동포는 그립지 않다는 건가요?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의 그 표현은 '말'인데 외국에 가서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썼다 해도 그건 우리 문학이 아니거든요.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모두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의사 지바고'를 쓴 파스테르나크도 정부가 나갈 수만 있는 일방 여권만 주고 나가라 했을 때 나갈 수 없다고 했어요.

러시아를 떠나면 자기는 뿌리 없는 풀과 같다는 것이었어요. 역시 그는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사는 것만이 반드시 애국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한국 사람이면 한국의 땅과 운명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한 번쯤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이 봉구의 <뿌리 없는 풀> 중에서 발췌 - 

 

1985년도에 출판된 한국현대문학전집을 읽다가 위와 같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글의 배경은 1960년대 초반인데 많은 지식인들이 조국을 등지고 일본,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고, 귀화를 하고 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전쟁후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비판한 그런 내용이지요.

조국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을 "뿌리 없는 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요즘 세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0년대의 시대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등지고 있는게 현실이지요.

그것도 대부분의 지도층 인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각설하고..............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민족의식, 주인의식과 같은 이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소설 속에서 작가가 얘기하고 있는 그런 시대의식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