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미완의 무박종주(성삼재 ~ 중산리 - 150806).

2015. 8. 7. 15:31등산/지리산


  ▲ 지리산 천왕봉.


  ▲ 연하선경.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정 호승의 시 '이슬의 꿈' 중 -


  지리와 한몸이 되기를 꿈꾸며 큰형님과 함께

  멀고도 험한 지리산 무박종주의 길을 나섭니다.


  사건의 발단은 셀리누님.

  복음병원에서의 저녁자리가 아니었다면...

  저녁자리후 큰형님의 차를 타지만 않았었다면...

  큰형님의 지리무박종주계획에 동의하지만 않았었더라면...


  암튼... 인생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니까

  모든 것은 그 분의 뜻이려니 생각하고 큰형님과의 약속장소로 갑니다.


  8월 5일 수요일... 백석역 오후 7시 31분 전철.

  8-4번칸에 승차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큰형님이 벌써 와 계십니다.

  한 대 앞 차를 타고 오셨다구요.

  무척이나 마음이 설레이시는 모양입니다.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합니다.

  민자역사로 바뀌고 나서 서울역은 처음 가는 듯 합니다.

  이것도 큰형님 덕분이네요.





  저희가 타고 갈 열차가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신창행 누리로 1735열차, 21:04 출발, 1번 승강장.



  진짜 오랜만에 타보는 열차입니다.

  "누리로" 열차는 2009. 6. 1. 운행개시 되었으며,

  누리 - 세상, 路의 합성어로 온 세상을 달리는 열차라는 의미로

  시속 150㎞로 달리는 친환경 열차라고 하네요.




  실내도 아주 넓고 쾌적합니다.



  최신형 폴더폰을 올려놓을 수 있는 받침대도 있네요.



  22:22 천안역에 도착해서 무궁화호로 환승을합니다.

  용산역에서 처음부터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와도 되는데

  큰형님께서 특별히 "누리로"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천안에서 갈아타는 무궁화호는

  전주, 논산, 익산, 오수, 남원, 곡성을 거쳐 구례구역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여수엑스포까지 달려갑니다.




  22:35. 정확하게 열차가 도착합니다.

  누리로와 비교하니까 무궁화호는 완전 화물열차네요...ㅋ



  열차는 낡았지만 실내는 아주 깔끔합니다.



  8. 6(목). 01:47. 구례구역에 도착합니다.

  지리산 산행을 하는 산객들은 보통 다음 열차를 많이들 이용하는데

  우린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기 위해 큰형님께서 신경을 쓰셨습니다.




  역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이동합니다.

  무조건 4명 합승으로 성삼재까지는 1인당 만원입니다.

  진짜 저렴한 가격입니다.

  왜 저렴하다고 생각하는지는 타 보시면 알게 됩니다.


  화엄사로 가는 산객이 있어 택시는 화엄사엘 들렀다가 성삼재로 향합니다.

  화엄사까지는 보통 15,000원을 받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오늘은 성삼재 손님과 합승한 관계로 그냥 만원만 받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산행하는 산객들을 배려해주는 기사님의 훈훈함이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성삼재(02:26).

  원래 새벽 3시부터 입장이 가능한 곳인데

  다행히 지키고 있는 직원이 없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큰형님의 노림수가 통했던 것이지요.



  보는 순간 돌로 굳어지게 만든다는 메두사가 딱 떠오르는 이정표입니다.

  하지만 즐건 마음으로 멀고도 험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노고단대피소까지 갑니다.



  음력 22일... 하현달인데도 달이 무척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노고단대피소(03:01).

  유부초밥으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노고단 고개를 오릅니다.

  큰형님의 흥분된 기분이 느껴집니다.



  노고단 정상을 가지 못하는 종주꾼들을 위해

  특별히 노고단 고개에 돌탑을 만들어 놓은 듯 합니다.

  지리산 3대 봉우리중의 하나인 노고단은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03:23).



  숲에서 느껴지는 새벽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무박산행에서의 즐거움이죠.

  나무에 있는 이슬로 몸이 흥건하게 젖습니다.



  돼지령(04:06).

  지리산 종주시 주의할 점은 세석까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라토너들이 대회에 참가해서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는 것과 같이

  지리산 종주 역시 기력이 왕성한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게되면

  자칫 종주에 실패하기가 쉽습니다.

  또 성공한다해도 무척 고된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의욕이 앞서서 급하게 가시려는 큰형님을

  제가 계속 뒤에서 잡아 당깁니다(04:15).



  임걸령에서 시원한 지리산 산삼수 한바가지씩 마시고 갑니다(04:25).

  물이 아주 좋습니다.

  세수하고 가기에도 좋은 곳이지요.






  반야봉엘 들러서 일출을 보고 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 산행목적은 지리 종주이기 때문에 패쓰하기로 합니다.

  삼도봉까지와의 거리가 같지만 난이도는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삼도봉(05:18).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의 분기점.




  삼도봉에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식사중에 일출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구요.

  형수님이 싸 주신 주먹밥으로 식사를 하는데... 시험에 들게 하시네요.

  맛은 좋았는데 먹기가 조금 불편했습니다.

  처음이라 그런것 같은데... 다음에는 좀 더 먹기쉽게 싸 주세요~~~^0^






  일출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갈 길이 멀어 출발합니다.





  20분쯤 쉬었네요(05:38).



  상쾌한 지리의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화개재로 향합니다.

  2010년 10월에 산방식구들과도 걸었던 길입니다.





  화개재입니다.



  포스트마다 흔적을 남겨야지요(05:56).





  너무나 예쁜 등로입니다.

  이제 토끼봉을 오릅니다.





  햇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큰형님은 너른 공터만 나오면 비박하기 좋은 곳이라고 하십니다.

  지리산에서의 단독 비박은 위험하지요.

  반달곰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ㅎㅎ



  캄캄할 때 지나왔던 노고단이 보이네요.



  저 멀리 태양 아래로 천왕봉이 보입니다.

  까마득하네요...ㅎㅎ



  아침햇살받이를 하고 있는 야생화들과 눈맞춤하면서

  이름도 예쁜 연하천 대피소를 향해 갑니다.




  오늘은 큰형님이 선두대장이십니다.

  저는 지난 월욜 삼산종주 후유증으로 후미를 맡았습니다...ㅋ




  이런 데크를 만나면 연하천대피소가 코앞이라는 얘깁니다.



  셀리누님이 이름도 생소하시다는 연하천대피소(07:36).



  땀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물통에 물을 보충하고 벽소령을 향해 출발합니다(07:51).






  등로 주변에 활짝 피어있는 어수리.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연하천에서 벽소령 구간은 비교적 평이합니다.



  큰형님은 거침없이 질주하고 계시네요.



  삼각봉에서 가야 할 코스를 바라봅니다.

  형제봉과 벽소령 대피소가 보이고 멀리 천왕봉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벽소령을 배경으로.



  형제봉(08:44).




  무박종주중인 산객한테 부탁... 단체사진...ㅋ



  남은 거리가 점점 짧아지곤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지나온 삼각봉을 배경으로.



  벽소령 대피소가 가까와졌습니다.








  벽소령대피소(09:20).

  성삼재에서부터 6시간 50분 걸렸습니다.



  시속 2.5㎞ 속도가 목표였는데 조금 빨랐네요.



  벽소령... 순 우리말로 푸른하늘재라는 의미.

  벽소는 碧宵寒月에서 유래한 말로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 빛을 띈다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연하천도 예쁜 이름이지만 벽소령도 정말 예쁜 이름입니다.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이제 세석을 향해 출발합니다(09:51).





  벽소령에서 세석까지의 6.3㎞.

  지리산 종주중 가장 힘든 코스라고 할 수도 있는 구간입니다.

  세석까지 가서도 힘이 남아 있어야 천왕봉을 쉽게 오를 수 있으니까요.




  계속해서 큰형님이 앞장 서 가십니다.



  이런 의자가 나오면 쉬어주는 쎈쓰!!!^^



  덕평봉 선비샘(10:40).



  물보충도 하고 아직까지 하지 못한 세수도 하고 갑니다.

  물이 아주 차갑습니다.





  거친 등로가 칠선봉까지 이어집니다.




  천왕봉을 바라보고...



  천왕봉을 배경으로...

  결과론이지만 오늘 우리가 끝내 천왕봉을 가지 못한 이율 알았습니다. 큰형님~~^^*

  바로 이 사진이 증겁니다.

  큰형님이 천왕봉을 절대 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요... 스틱으로!!!



  파노라마.



  제주바다 외돌개를 연상케하는 칠선봉(12:02).






  세석을 향해 가는도중 예기치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큰형님이 발목을 접질리시면서 우측 종아리에 경련이 온 겁니다.


  응급조치를 하고 천천히 진행을 하는데

  근육 뭉친것이 다리 여기저기를 돌아 다닌답니다.

  일단 세석까지는 가야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을 합니다.


  이제 앞에 보이는 영신봉만 넘으면 세석입니다.



  이쯤에서 가장 힘 든 계단을 오릅니다.

  200개쯤 됩니다.



  중간 참에서 천왕봉을 땡겨 봅니다.



  힘 든 표정이 역력해 보이는 큰형님.

  걱정이 되지만 꾸준히 가고 계십니다.




  돌아보니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이네요.



  반야봉은 짝궁뎅이입니다.



  제석봉과 천왕봉이 무척 뜨거워 보이네요.



  하늘이 예쁩니다.



  힘들게 영신봉을 올라왔습니다(12:48).

  세석까지 2시간 30분 정도를 예상했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리겠네요.

  하지만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석대피소로 갑니다.

  뒤로 세석평전과 촛대봉이 보입니다.









  세석대피소(13:02).

  조금 늦었지만 큰형님 계획대로 세석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큰형님이 세운 당초 계획에는 13:00. 세석 도착이었거든요.





  대피소 아래 샘에서 요기를 하고

  찬 물로 발도 씻고 머리도 감고 양말을 갈아 신으면서 조금 오래 쉬어 갑니다(13:34).



  장터목 대피소로... 정상적인 컨디션이라면 1시간이면 족한 거리입니다.



  세석대피소를 배경삼아.





  세석에서 원기 회복을 위해 쉬었지만

  큰형님은 아직도 몸 컨디션이 무척 힘 든 모양입니다.

  하긴... 연세가 있으시니까요...ㅎㅎ




  촛대봉(13:49).



  삼신봉 너머로 천왕봉.

  오늘 천왕봉엘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촛대봉을 일별하고...



  삼신봉을 오릅니다.



  돌아보니 촛대봉과 영신봉이 보이네요.



  왠만하면 삼신봉에서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셨을텐데

  큰형님이 무척 많이 힘이 드신 모양입니다.

  그냥 지나가시네요.



  삼신봉에서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연하선경.

  우측으로 일출봉 능선이 뻗어나가고 있네요.

  이제 연하선경 속으로...








  동자꽃이 힘을 내라 합니다.



  거의 에너지가 방전되신 큰형님.

  마음은 벌써 천왕봉에 가 계실텐데...




  다시 또 연하봉을 향해 갑니다.




  이름도 예쁜 연하봉(煙霞峰. 14:46).





  장터목 대피소를 향해서...



  일출봉에서 큰형님이 천왕봉을 포기하실 의사를 내비치십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괜히 미안해 하시는 듯...



  큰형님이 마음을 접으셔서인지 천왕봉도 연무 사이로 자신을 감추네요.





  일단 장터목까지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장터목을 향해 갑니다.



  하산 할 중산리가 까마득합니다.

  천왕봉에서든 장터목에서든 한참을 내려가야 합니다.



  백무동 버스터미널에 전화로 확인을 했더니

  서울 올라가는 차가 동서울은 오후 6시, 남부터미널은 오후 6시 30분이 막차라고 합니다.

  지금 큰형님 상태로 봐서는 백무동까지 6시 이전에 하산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암튼... 장터목 대피소입니다(15:11).

  참고로 하절기 장터목에서 천왕봉 방향 통제시간은 오후 4시입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큰형님은 저보고 천왕봉 찍고 칼바위에서 다시 만나시자고 하시지만

  저도 혼자서는 별로 가고싶지도 않고 힘도 들어서 함께 하산하기로 합니다.

  천왕봉은 토욜날 아내가 대신 찍어주는걸로...^0^



  지리산을 여러 차례 왔었지만

  장터목에서 중산리 탈출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큰형님 덕분에 지리산의 새로운 코스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ㅎㅎ



  천왕봉에서 중산리 하산코스보다 길이 무척 험합니다.



  무척 힘들어 보이시는 대단하신 큰형님.



  물 좋은 계곡을 끼고 내려갑니다.

  언제든 알탕을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아직도 한참을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내려갑니다.






  아쉰 마음에 돌아다 봅니다.

  하지만 미련은 없습니다.

  지리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폭포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유암폭포라고 하네요(16:17).





  말씀은 하지 않으시지만 지금 큰형님은 무척 힘 든 상태이십니다.

  제가 처음 무박종주를 했을 때... 무척 힘들었었거든요.

  의지와는 무관한게 많이 있으니까요.


  목표 직전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용기입니다.

  괜히 객기나 만용을 부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니까요.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코스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제 시원한 지리산 맑은 물에 알탕 할 일만 남았습니다.

  알탕을 하고나면 큰형님 원기도 회복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늘 하던 곳을 찾아 하루종일 땀에 쩔었던 몸을 담급니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한참을 들어가 앉았습니다.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지리산을 나섭니다.



  산행종료(18:18).

  큰형님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시네요~~^0^



  택시를 타기 위해 걸어 나오면서 큰형님이 다시 한번 도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일부러 제가 묻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복수혈전을 계획하시더라구요.

  한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신다고...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텐데...

  다음에 다시 오실 때도 또 동행하겠다고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럽게 감행한 지리무박종주.

  지리와 한몸이 되기를 꿈꾸며 나선 지리무박종주.

  비록 지리산 산신령이 허락치않아 미완으로 끝났지만 가슴 뿌듯합니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큰형님과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큰형님... 다음 번엔 꼭 성공하기로 해요~~~♡


  ◆ 산행코스 : 성삼재 - 노고단 - 연하천 - 벽소령 - 세석대피소

                 - 장터목 - 칼바위 - 중산리(31.7㎞).

  ◆ 산행시간 : 15시간 52분(산행인원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