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중앙일보 1월 12일).

2010. 1. 12. 17:58자유게시판/자유게시판

 

유럽에 살면서 늘 궁금한 게 있다. 해마다 세계 각국의 행복 지수를 조사하면 1위가 늘 덴마크라는 점이다. 취재차 덴마크를 두 번 가봤지만 그들이 왜 행복하다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이웃 나라인 스웨덴보다 나라도 작고 인구도 적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힘 좀 쓰는 나라에도 못 들어간다. 물가는 또 얼마나 비싼가. 택시를 타면 미터기 올라갈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젊은이들은 외식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웬만한 직장인은 월급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오후 3시 반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데 그나마 낮에도 우중충한 날씨가 일주일에 5∼6일은 된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행복하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이 궁금증이 지난해 12월 마침내 풀렸다. 기후변화회의 취재차 코펜하겐에 열흘 이상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였다. 나는 ‘덴마크인의 행복 탐구’ 설문지를 준비했다. 나이와 이름, 직업과 월수입 등의 개인 정보와 함께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를 물었다. 보기를 고르거나 서술하도록 했으며 보충 질문도 던졌다. 기후변화회의가 열렸던 벨라센터와 코펜하겐 시내 카페, 극장 그리고 시청 앞 광장에서 닷새간 펜을 들고 다니며 51명에게 “행복하세요?”라는 조금은 황당한 질문을 던져 답을 얻었다. ‘네’라고 대답한 사람은 43명으로 80%가 넘었다. 대부분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최근에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냐고 묻자 상당수가 ‘오늘 아침’ ‘어제 저녁’ 등으로 대답하는 것도 놀라웠다. 그 이유로는,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사회복지를 꼽았다. 덴마크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이란 게 없다. 의료 서비스도 잘 갖춰져 있다. 암에 걸려도 우리나라처럼 병원비 걱정이 앞설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거의 모든 응답자가 행복의 비결로 꼽은 것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대학생 에밀 마드센(23)은 “어릴 때 집과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게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면서 “내가 그렇듯이 남도 나를 존중하고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월 7000유로(약 1135만원)를 버는 IT 컨설턴트 드루엔 이베르센은 “남을 존중하는 것은 부정이나 불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보지 않는 것과도 통한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단단한 신뢰의 고리가 만들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월 1500유로(약 243만원)를 버는 파트타임 노동자 페두 역시 타인에 대한 존중을 첫째로 꼽았다. 51명의 말을 듣다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을 많이들 주고받는 요즘이다. 우리도 새해에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데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자. 우리 행복의 크기도 거짓말처럼 커질지 모를 일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