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여행기
○ 첫 발을 디뎌본 흑산도
홍도를 출발한지 40분 만에 흑산도 예리항에 도착한 쾌속선은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쏟아놓은 후 목포항을 향해 줄행랑을 쳐버렸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20분 !
이글거리는 태양이 퍼 붇고 있는 불볕으로 예리항 부두는
지글지글 끓고 있었고 더위에 지친 수많은 어선들이 졸고 있었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부두에 올라서니
"기암괴석과 숲이 아름다운 섬 흑산도(黑山島)"라고 새겨진 돌 비석이 무겁게 환영해주었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黑山島)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섬 !
[흑산 여객터미널]
말로만 들어왔던 흑산도에 이처럼 난생 처음 상륙했다는 사실이
꿈결처럼 느껴지면서 감개가 무량해져 왔다.
○ 파시(波市)의 전설이 스며있는 예리항
흑산도 예리 항 주변의 거리는 타임머신에 의해
시간이 잠시 멈추어져 있는 과거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건물들은 6~70년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연안여객 터미널 매표소를 비롯한 터미널 구멍가게의 분위기 또한
찐 계란 있어요? 사이다 있어요? 하고 외쳐대던
옛날 시골 차부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스쿠터를 모는 다방아가씨가 차 배달을 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거리에
그 때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변치 않고 서 있는 다방의 모습 속에는
[흑산 예리항 찻집]
모닝커피를 마시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팝송을 신청하던
옛 시절 음악다방의 추억과 낭만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조기, 고등어, 삼치 등, 바닷고기가 넘치도록 잡히던 시절
바다에서 열리는 어시장(魚市場)인 흑산도 파시(波市)가 열릴 무렵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과 어선들로 흑산도는 불야성을 이루었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과 술집작부의 젓가락 장단 노랫가락으로
예리항은 밤새 흥청거렸다는데
이제는 모두 흘러간 전설일 뿐, 예리항에는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가락만 홍어집 간판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흑산도에서 유명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하나는 홍어이고 또 하나는 전복이라고 한다.
아홉 척의 배가 흑산도 근해에서 잡아내는 흑산도 홍어의 양이 많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데
홍어는 홍어회를 만들어 먹거나 홍어를 삭혀서
돼지고기,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삼합(三合) 요리가 별미라고 한다.
○ 흑산도 육로관광
흑산도에 들어오면 흑산도를 구경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흑산도를 둘러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버스나 택시를 타고 섬 길로 흑산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방법이다.
28킬로 정도 뚫려있는 흑산도 도로는 절반은 포장이 되어있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까지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길을 따라 흑산도 육로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흑산 배낭기미 해변]
달리는 관광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1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흑산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 11개로
모두 25개 부락에 약 5천여 명이 살고 있단다.
흑산도 관광호텔이 있는 "배낭기미"해수욕장 앞 바다 양식장에는
수많은 부표가 떠 있었다.
흑산도 주변바다에는 적조현상이 없어 양식장이 잘 된다는데
주로 양식하고 있는 것은 전복과 우럭 두 종류로서
양식하고 있는 전복에게는 다시마를 먹이로 준다고 한다.
○ 진리를 지나 곤촌리까지
버스는 처녀당이라는 성황당 길을 지나 대관령 고개 같은 꼬부랑길을 넘고 있었다.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난 뒤
서해상에 출몰하는 왜구들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반월성을 끼고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 가니 고개 너머에 숨어있던 흑산도 서쪽바다가
아름다운 수묵화의 모습으로 버스 차창을 향해 뜀박질해 들어왔다.
해지기 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태양~!
푸른 바다, 망망대해의 수평선, 수평선 위에 걸쳐있는 뭉게구름,
몽실몽실 수면 위에서 살포시 피어오르고 있는 물안개,
검은 실루엣을 그리며 꿈결처럼 떠 있는 섬 ! 섬 ! 섬 !
약수터를 지나자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있는
절묘한 지도바위와 함께 포장도로의 종점, 곤촌리 포구가 나타났다.
어선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곤촌리 포구 앞에는
뽀얀 물안개가 피어 있었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포장도로 끝에서 되돌아 온 버스가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앞에 멈추어 서자
"흑산도 아가씨"를 부르는 "이미자"의 애잔한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있었고
붉은 태양이 석양으로 물든 수평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 상라봉 정상에서의 해 내림, 일몰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옆 삼라봉 정상을 오르기 시작했다.
10여분 계단 길을 한 걸음에 올라 디디고 선 삼라봉 정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낙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라봉 정상에 서서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둘러보았다.
아~ 어찌 이리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단 말인가 !
[삼라봉에서 바라본 예리항]
구비 구비 열 두 고개 아래에는 빙 둘러 서 있는 섬들을 천연 방파제 삼아
천혜의 항구 예리항이 고즈넉하게 앉아있었고
반대쪽 서쪽 바다에는 이글이글 애띤 얼굴로 동쪽바다에서 불끈 솟아올랐을 태양이
붉은 낙조가 되어 서서히~ 수평선을 향해 해 내림의 몸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엄원용" 시인의 낙조(落照)라는 시(詩)가 떠올랐다.
오호~ 저기 붉은 얼굴을 보라.
서쪽 하늘을 곱게 장식하는 사랑의 몸짓
황홀한 불놀이, 불놀이야
불길 따라 시간이 타고 있다.
어두워가는 세상도 타고 내 마음도 탄다.
온 세상을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 신비의 꽃밭이다.
아름다워라.
이제 제 할 일 다 하고 때가 되매
황홀한 몸짓 조용히 거두며 말없이 명상의 나라로 떠난다.
[삼라봉 낙조]
○ 예리항 방파제 길 산책과 바다낚시
꿈결과도 같았던 흑산도 육상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니
예리항에는 먹물처럼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지금부터 내일 오전 10시 40분까지는 자유시간이다.
흑산도에서 맞은 이 마지막 밤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
릴낚싯대 하나를 챙겨 들고 예리항 방파제 길 산책에 나섰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밤바다 위엔 초롱거리는 별빛이
유난히 밝게 명멸하고 있었다.
방파제 어둠 속에서 바라다 본 예리항엔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 살아왔을 외로운 불빛이 물에 비쳐 일렁이고 있었다.
부두 끝자락에 서서 미끼를 꿴 릴낚싯대를 던졌다.
던지자마자 툭~툭~ 거리는 입질과 함께 부르르 손맛이 전해져 왔다.
무슨 고기일까? 궁금해 하며 채 올린 낚싯대 끝에
우럭 한 마리가 파드득 거리며 대롱대롱 매달려 나왔다.
신선도가 떨어져 버린 미끼인데도 이렇게 집어넣기만 하면
고기들이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흑산도는 정말 고기가 많은 섬인가 보다.
노래미도 나오고 망상어도 귀한 얼굴들을 내 밀어 주었다.
작은 놈들은 모두 방생해 주고 제법 쏠쏠한 놈, 몇 마리로 회를 떠
초장에 살짝 찍어 입에 집어넣으니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런 감칠맛을 과연 세상 어디에서 맛볼 수 있단 말인가 !
[예리항 밤낚시 조과]
흑산도의 밤은 깊어가고 즐거웠던 여행도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출발할 때의 설레임 대신 여행을 마감할 때의 아쉬움이 가슴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흑산도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 자산 "정약전"선생을 기린 자산문화 도서관
다음 날 아침 번쩍 눈을 뜨니 바다 위에 안개가 가득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낀 안개 때문에
목포에서 들어와야 할 쾌속선이 당초계획보다 두 시간 정도 연착될 전망이란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연안여객 터미널 부근에 있는 자산 문화도서관을 찾았다.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해양생물에 대한 소중한 기록
"자산어보"를 남겼다는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자
조선후기 문신인 "정약전" 선생을 기리는 도서관에는
"정약전"선생에 관한 역사적인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예리항의 아침]
오후 12시 반 드디어 배가 들어왔다. 자 이젠 떠날 시간이다.
떠나기엔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가슴 속은 벅찰 만큼 뿌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눈으로 보고 누렸던 안복(眼福)이 얼마나 많았던가!.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에 있는 구절 하나가 생각났다.
“여행은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며 내가 만들어가는 것” 이라는..
그래 이제 홍도 흑산도 여행은 이만 접고 새로운 또 다른 여행을 슬슬 만들어 가보자 !
사람들은 여행 길 위에서 언제나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