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얼음 트래킹.

2013. 2. 1. 16:07등산·여행/가보고싶은곳



철원 8경 중 으뜸으로 치는 고석정의 겨울풍경. 얼음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마치 인류의 시원을 찾아가는 듯 사뭇 서정적이다. 


아시아투데이 양승진 기자 = 얼음 위를 걷는 기분은 어떨까.

그것도 28만 년 전 시뻘건 용암이 훓고 지나가면서 생긴 협곡과 주상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발길은 인류의 시원을 따라가듯 원초적인 자연미를 선물한다.

강원도 철원은 지금 27년만의 한파에 동토(凍土)로 변했다.

온 천지가 수북한 눈이고 136km의 한탄강도 50cm 두께로 꽁꽁 얼어버렸다.

가는 곳마다 순백의 미가 철철 넘친다.

  /철원=글ㆍ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한탄강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이 직탕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

한탄강(漢灘江)은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해 김화ㆍ철원ㆍ포천 일부와 연천군 미산면과 전곡읍의 경계에서 임진강(臨津江)으로 흘러든다.

화산폭발로 형성된 추가령구조곡의 좁고 긴 골짜기를 지나는 강물은 절벽과 협곡으로 이뤄져 흔히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린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은 뱀처럼 굽은 협곡 사이를 걷는 것이다.

겨울철이 아니면 두 발로 들어가 보지 못하는 직탕폭포와 송대소, 마당바위, 고석정 등 용암이 부린 ‘자연 예술품’을 눈앞에서 만나는 일이어서 온몸이 짜릿해진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 코스는 일반적으로 직탕폭포에서 출발해 송대소, 승일교, 고석정을 지나 순담계곡까지다.

직탕폭포에서 고석정까지는 용암이 지난 흔적을 더듬다보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순담계곡까지는 급류를 이뤄 얼음이 얇은 곳이 많다. 총 6시간 정도 걸린다.

출발점인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로 불리며 철원 8경 중 하나다.

그리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한 3m 높이의 거대한 고드름 기둥 속으로 흐르는 폭포수가 세차고 우렁차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수량은 풍부하다.

폭은 80m로 한눈에 다 들어와 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실망할 테지만 그나마 물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이곳 밖에 없다. 

깎아지른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얼음 위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관관객들.



직탕폭포를 뒤로하고 가는 길은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간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가끔 얼음장 깨지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밟고 있는 얼음은 미동도 없다.

빨간색 태봉대교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썰매 든 여행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인다.

태봉대교는 궁예가 세운 태봉국에서 이름을 빌려와 여름철에는 번지점프 명소로 이름이 높다. 다리 아래에 있는 송대소는 개성 송도의 3형제가 이곳에 와 둘은 이무기에 물려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이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깃든 소(沼)다.

깊은 곳은 30m나 돼 한탄강 줄기 중 가장 깊다.

용암이 휘돌아나가면서 생긴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막아서 마치 석성을 보는 듯 장엄하다. 절벽은 용암이 식으면서 굳은 돌기둥으로 이뤄져 오각형·육각형·팔각형 등 모양도 제각각이다.

시멘트벽을 둘러친 것처럼 강을 막아선 주상절리는 이따금 동굴에서 나온 물이 얼어 고드름으로 매달렸다.

일행 중 일부가 눈사람 만들기 시합을 하는 통에 일대는 까르르 웃음소리로 가득차고, 주상절리를 맞고 나온 소리가 메아리처럼 강을 따라 흘러간다.

한탄강 얼음 위에서 본 고석정. 나무는 물론 바위에까지 상고대가 폈고 쉬고 있는 나룻배에 눈이 쌓였다. 


◆한탄강의 정점 ‘고석정’

송대소를 지나면서부터 얼음 위에 안전표시가 놓여있다. 가장 두꺼운 얼음 위로 안전하게 가라고 유도하는 표식이다.

강폭이 점점 넓어지고, 그 위로 눈이 쌓여 서정적인 미를 발산한다.

한여름이라면 협곡을 지나는 물소리가 제법 컷을 법한 강은 얼음만 덮은 채 말이 없다.

승일교에 다다르기 전 길은 잠깐 강변으로 나가고 거대한 마당바위가 나온다.

앞서간 사람들이 미끄럼틀로 삼았는지 빙판이 따로 없다.

주변에 있는 여울은 물방울이 튕겨 알록달록한 고드름을 매달았다. 어떤 것은 와인 잔을 엎어 놓은 것처럼 영롱하고 또 어떤 것은 새를 꼭 빼닮았다. 

승일교까지는 강변에 갈대가 수놓아져 이따금 새들이 날아올라 운치를 더한다.

넓은 강폭은 얼음 때문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큰 바위들이 놓여 한여름 급류의 위용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동송읍 장흥4리와 갈말읍 문혜리를 잇는 승일교는 6·25를 전후해 남북이 합작으로 만들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다리는 이름에 얽힌 유래가 많다.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에서 빌려왔다거나,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박승일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이름 지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 이름지어졌다는 승일교. 


승일교 아래는 얼음 위로 물이 흘러 질벅질벅하지만 주상절리에 붙은 얼음기둥은 너무도 커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승일교를 지나면 거의 평평한 얼음 위를 지나 고석정으로 향한다.

고석정은 한탄강 트레킹의 정점을 찍는 곳이다.

철원8경 중 으뜸인 이곳은 한탄강 한가운데 20m 높이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바위산에 붙은 소나무가 한국적 정취를 보이고 팔각정에서 바라보면 기막힌 풍경화를 그려낸다.

이곳에는 임꺽정의 전설이 깃들어져 그가 은거했다는 고석바위와 오줌을 눴다는 움푹 파인 바위도 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고석정 찬사’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아름다워라 절경 한 구역/예부터 이름난 고석정/물이 깊어 검푸르고/골은 돌아 몇 굽인데/삼백척/큰 바위 하나/강 복판에 우뚝 솟았네(중략)/여기서 전쟁을 끝내고/총 닦고 칼 씻던 곳이라기에...

강변의 갈대를 배경으로 얼음 트레킹 하는 사람들. 


◆여행메모

△한탄강 얼음 트레킹= 직탕폭포~승일교(1시간40분)~고석정(2시간)으로 이어진다. 너무 짧다고 느껴지면 이 코스를 왕복하면 좋고 더 길게 가고 싶다면 칠만암에서 순담계곡까지 6시간 코스도 있는데 얼음이 얇아 강변 우회 길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